글 김상량 작가 | 사진 아침놀북
| 그대 이름은 무명 가수
영어 passion(열정·열망)은 아픔·고통을 뜻하는 라틴어 passio에서 나온 말이다. The passion은 예수가 로마군에 체포되어 십자가에 죽임을 당하기까지 겪은 고통과 수난을 뜻한다. 열망이나 열정은 곧 고통의 근원이 된다는 이야기이다. 우리는 곧잘 넘쳐나는 열정 때문에 그것을 제어하지 못하고 자신을 고통의 심연 속으로 몰아넣을 때가 많다.
수많은 사람들은 종종 자기 재능을 믿고 유명인이 되어보는 꿈을 꾸어 본다. 무대에 서서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환호 속에 열정적으로 노래를 부르는 자기 자신을 수없이 그려보며, 오만가지 궂은일 다 한다. 수년간 모은 돈 다 바쳐 음반을 내보고, 오디션을 보러 다닌다. 그러다 가정은 파탄이 나고, 머리에는 희끗희끗한 새치가 돋아나는 세월의 길목에 접어든다. 그래도 가슴 한 켠에서는 열정은 식을 줄 모르고, 다시 한번 도전할 기회를 마음속 깊은 곳에 간직하며 산다. 그대 이름은 무명 가수이다.
어찌 가수의 길만이 서러움이 있겠느냐.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좁은 문을 뚫기 위해 발버둥을 쳐보지만 팔리지 않는 제품을 떠안고 굳게 먹었던 마음의 성벽은 속절없이 내려앉는다. 열정 하나로 떠났던 여행길에서 우리는 대다수가 열정의 의미를 곱씹으며 한없는 허탈감에 빠져들게 된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나아갈 길이 보이지 않는다.
| 붉게 타오르는 황혼을 꿈꾸다
80이 다 되어가는 인생의 끝자락에서 나를 돌아보니, ‘나는 열정이 부족한 생을 살아왔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그저 파도가 치는 듯, 마는 듯 하는 그런 인생이었다. 별다른 생각 없이 성실하기만 한 삶이지 않았나 싶다. 한번 사는 인생 지금이라도 나에게 조금치의 열정의 잔불씨가 살아있다면 이제라도 붉게 타오르는 황혼이고 싶다.
4년여 전부터 나는 100여 명이 넘는 고등학교 동창들의 단톡방에 함께 소통할 수 있는 글을 올리기 시작했는데, 의외로 반응이 좋아 오래도록 지속하고 있다. 어느 날 나의 글 나부랭이들을 본 딸이 책으로 발간하자고 했다. ‘아이고 천부당만부당한 말씀이지요. 글이라고는 국민학교 시절 방학 숙제로 일기 쓰던 것이 전부인데 어디다 내놓겠다는 것인가요. 딸아! 애당초 꿈도 꾸지 말거라.’
그러나 인생은 그렇게 쉽게만 흘러가는 것이 아닌가 봅니다. 그때부터 인생이 겉잡을 수 없이 꼬이기 시작했습니다. 책을 발간하려고 마음을 먹으니 출판사가 있어야 했습니다. 이를 위해 출판과는 다른 분야의 일을 하던 딸은 출판사를 세웠습니다. 그리하여 직원은 없지만, 대표만 있는 훌륭한 회사 하나가 탄생했습니다. 회사 이름은 「아침놀북」이라나 뭐라나.
책의 제목은 「우리가 이 세상에 머무르는 까닭」이라고 철학서 같은 냄새를 풍기게 만들고, 원고를 인쇄소에 넘겼습니다. 필요한 자금은 창작자 후원업체인 텀블벅(Tumblbug)을 통해서 모금하기로 했습니다. 후원을 받기 위해 프로젝트를 한 달 동안 진행한 결과 목표금액의 약 500%가 모금되었습니다. 다행히 어느 정도의 자금력을 가지고 책 표지도 가장 고급재질인 양장(hard cover)으로 제작 가능했습니다. 표지디자인을 위해 딸과 함께 전체적인 밑그림부터 글꼴, 글씨 크기, 색상 등 수정을 거듭하면서 안을 만들고, 디자이너의 손을 거쳐 꿈꾸던 예쁜 책이 완성되었습니다.
국립중앙도서관에서 국제표준도서번호(International Standard Book Number)도 부여받았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머무르는 까닭」 김상량저, 출판사 「아침놀북」 이라는 이름 아래 전국 동네서점과 판매계약을 완료하였습니다. 이제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는 나의 글이 독자들로부터 좋은 평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내용이 부실하면 아무리 광고를 하더라도 팔리지 않습니다. 좋은 평을 받기 위해서는 글을 잘 써야 한다는 것을 다행히 진즉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아주 정성 들여 예쁘고 예쁜 좋은 말들을 몽땅 주워 모았습니다. 당연히 모든 서평자들이 10점 만점에 10점을 주었습니다. 나를 만나보고 싶다고도 하니, 나의 팬클럽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내가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집사람이 그렇게 걱정을 합니다. 거짓이 아닙니다. 몇 편의 서평을 만나 보도록 하겠습니다.
「저자께서는 글을 참 잘 쓰십니다. 멍하니 한 줄씩 읽다 보면 어느새 눈시울이 붉어집니다. 저자가 자신의 이야기만 얘기하는데 왜 저는 눈물을 흘리고 있을까요.」
「지루한 에세이 또는 싱거운 자기 계발을 이야기하는 책이라 착각한 자신이 부끄러워진다.」
「기억에 얽매이거나 과거에 머무르지 않고 현재로 미래로 그리고 세상으로 향하는 시각의 확장과 고민들이 포근하게 와 닿는 것 같다.」
「한 편의 소설같이 느껴지는 스토리는 에세이 같지 않은 묵직한 느낌을 준다. 이 책을 통해 부모님 세대를 알게 되었고, 부모님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않고 지금이라도 많이 사랑하고 표현하고 싶어진다.」
아직 꺼지지 않은 나이 80에서의 열정이 너무 멀리까지 와버렸습니다. 이제 다시 돌아가려고 하여도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길목에서 그래도 나는 아름다움을 쏟아내는 서평을 읽으며 마지막 열정을 불태웁니다.
| 김혜자를 만나는 길밖에 없다
연예인 김혜자는 무명 연예인들의 희망입니다. 극 중에서 「타타타」 노래를 들으며 신세 한탄 두 번 했는데 무명 가수 김국환을 가요톱텐 5주 연속 1위로 만들었고, 극 중에서 「립스틱 짙게 바르고」를 불러주더니, 미국에 가 있던 임주리를 불러들여 대한민국 상이란 상은 밥상까지 다 휩쓸게 해버렸습니다.
나의 딸은 나를 베스트셀러 작가로 만들겠다고 합니다. 딸아! 그렇게 되는 길은 오직 또 다른 김혜자를 만나는 길밖에 없다. 근데 엄마는 열심히 기도하면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고 했으니, 이러한 방법을 알고 있는 우리는 얼마나 행운이더냐. 베스트셀러가 되는 길도 그렇게 멀지는 않은 것 같구나.
김상량 작가
한국전쟁의 폐허부터 디지털 시대까지 역사상 가장 극적인 변화 시대를 살아온 해방둥이 세대이다.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기술고시에 합격하여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다. KT&G 상무와 한국담배 판매인회 중앙회 회장을 역임했다.
‘끝자락 마을’이라 불릴 정도로 깡촌인 작은 시골 마을에서도 가장 가난한 집 6남매의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꽤 오랜 시간 동안 먹을 것이 없어 배를 곯고, 잦은 병치레로 위태롭고 힘겨운 삶을 살았다.
그럼에도 누군가 그때의 삶으로 다시 돌아가면 어떻겠냐고 묻는다면 망설임 없이 말하겠다.
“그래도 그립다 말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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